"저기, 나 연필깎이 한 번만 빌려주라!" 펠릭스는 노란색에 가까운 연주황색으로 번쩍번쩍거리는 머리카락의 남자아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린다. 파란 테가 달린 하얀 실내화 한 짝이 1학년 9반 교실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펠릭스는 발로 남자아이의 실내화를 힘줘 문간 밖으로 밀어낸다. "여기 1학년 9반이예요. 다른 반 학생은 출입금지라고 적혀 있잖아요."...
펠릭스는 잠이 참 많았지만, 잠을 많이 자지는 않았었다. 학창시절에는 스탠딩 책상에 머리를 박아가면서도 어떻게든 깨어 있었고, 커서도 열시에 잠들어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는 건강한 생활을 해왔었다. 열한시 전에 꼭 자라는 의사의 권고와 하루 일곱시간은 자라는 명령에 가까운 가족의 걱정에도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밤잠을 줄여가기도 했었다. 그러던 펠릭스 멘델...
디어 다이어리, 나는 살면서 한 달 이상 다이어리를 써본 적이 없어 네가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것 미리 첫 페이지에 적어두도록 할게. 보통 내가 1월달을 반 정도 채운 다이어리는 내 고등학교 동창의 손에 들어가. 처음에 3월달에 내가 플래너를 쓰기 너무 귀찮다면서 옆자리 친구에게 칭얼거리자 그러면 자기가 써도 되냐고 내 뒷자리에서 물어본 게 우리가 처음으...
"바깥에 눈 내리네." 펠릭스는 바깥에서 내리는 싸리눈을 멍하니 바라본다. 하얀 가루가 눈처럼 흩뿌려진 핫초코에는 아직 입도 대지 않은 채였다. "그렇네요." 손에 든 핫초코가 더이상 '핫' 이 아니게 될 때까지 펠릭스는 핫초코만 빤히 들여다본다. 부풀어올라 있던 거품이 다 가라앉고 표면에는 입술을 대도 뜨겁지 않다. "빨리 다 마시고 가자." 펠릭스는 코...
열두살 때 방문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스위스. 벌써 세 번째로 방문하고 있지만 언제 봐도 경이로운 풍경이다. 평생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자신이 스케치한 그림을 옆에 두고 창밖으로 보이는 융프라우의 풍경을 찍은 사진을 올리자 하트가 쏟아진다. 대부분의 알림은 무시했지만 한 답글에 펠릭스의 눈이 멈춘다. 재밌게 놀고 있어? 아무것도 게시하지는 않으면...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역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아, 그래요! 저야 감사하죠!" 이번이 다섯 번째 첫 데이트였다. 엑토르가 중간에 이건 도저히 못참겠다 하고 뛰쳐나오지 않은 첫 번째 데이트기도 했다. 매너도 좋고 외모도 준수하다, 솔직히 엑토르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자가용도 자기 집도 있고 데이트 상대에 대한 책임감과 배려도 충만하다. 음악이라...
부, 명예, 행복, 사랑, 미모, 젊음, 지혜, 덕. 이렇게나 많은 덕목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다. 물론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 덕목을 다 갖춘 남편을 오늘부로 정확히 1년째 두고 있을 뿐. 아니, 잠깐만. 그렇게 이야기하려면 그 남편의 이야기도 들어봐야겠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이 문...
"이런 굉장한 파티에 혼자 계시는 분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엑토르는 고개를 들어올린다. 개츠비 역은 아니다. 톰 역도 아니다. 하지만 배우 뺨치는 정갈하고 준수한 외모였다. 앙상블인가? 엑토르는 마음속으로 아닐 수도 있지! 하고 샴페인 잔을 든다. "굉장한 파티죠. 혼자 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혼자 파티에 오는 거 처음 보나?" 엑토르에게 말을 건...
퇴근 시간이 되고 정형외과 의사 베를리오즈는 기지개를 펴며 하품한다. 오늘도 하루가 잘 마무리되었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간호사들과 동료 의사가 베를리오즈에게 인사를 한다. 베를리오즈는 대충 인사를 받고는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선생님!" "왜요." 성가신 데로즈였다. 베를리오즈는 '아래로' 버튼을 누른다. "오늘 진료에 방해될까봐 말씀은 안 드리고 있었는...
"내가 묻고 있잖아! 물으면 대답을 좀 해!" 아까부터 시끄러워, 펠릭스는 머리를 꾹꾹 누른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본인이 얼마나 매너 없게 행동했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본인이 가기 전에 이미 몇 십번은 주의를 줬음에도 다 까먹고, 웃다가, 말을 걸면 부루퉁해지거나, 대화도 본인이 관심 없는 주제에는 관심 없다는 걸 역력하게 피력하고...
"개인적으로는 최고 수준의 콰르텟이라길래 기대했는데... 솔직히 좀 아쉽네요. 제1바이올린이 실수를 내다니, 이건 웬만한 연주회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 아닐까요?" 엑토르의 귀가 파르르 떨린다. 엑토르는 저 목소리를 알고 있다. 이전보다는 살짝 낮아졌지만 그때와 거의 비슷하게 부드러운 목소리를 알고 있다. 저 까만 곱슬머리도 알고 있다. 무엇보다 ...
군래컴퍼니 대표 지랄견인 후고 볼프는 몹시 피곤하다. 왜 우리 부서가 마지막이냐고 왁왁대보자 헨젤 과장의 나직한 한 마디가 돌아왔다. "어쩌겠어, 우리는 쉬운 부서잖니." R부에 비하면 발언권이 그래도 조금은 더 있는 편이었지만 R부랑 비교해봐야 의미가 없다. R부는 발언권이 마이너스라고 봐도 되는 수준이니까 말이다. 본인들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편인 것 ...
클래식 작곡가 RPF/RPS 연성을 합니다. 간혹 작곡가 관련 개인적 사담+ 작곡가 편지 자료+ 작곡가 TMI 자료 등등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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