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을 하고 나면 수당도 챙겨주고 바깥에 주룩주룩 내리는 비도 그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야근을 하기로 했던 엑토르는 여전한 굵은 빗줄기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사티 주임의 우산을 빌리면 지금 당장의 빗줄기야 모면할 수 있겠다지만 다음날의 안위를 보장할 수가 없다. 전부 똑같이 생긴 까만 우산 같은데 몇 개는 주문제작 한정판이고 몇 개는 어디 여행가서 사...
"그것 보세요, 찍고도 아무 이상 없으셨잖아요?" 이제 '베를리오즈 씨' 또는 '선생님' 이라는 호칭이 백배는 익숙해진 엑토르는 아까 사진을 찍은 자세 그대로 의자에 기댄다. 턱을 괴고 있자 생각이 많아진다. "그렇네. 사진 1초 찍히는 거 잘 찍히겠다고 십오분 동안 신경쇠약이 올 것 같았던 거 빼면 말야." "사진 찍으면 영혼이 빠져나간다든가 하는 소리 ...
시계의 눈금이 다섯 시 이십 분 전을 가리킨다. 엑토르는 읽고 있던 '오셀로' 를 집어넣고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는다. 이십 분만 더 있으면 퇴근시간이었다. 가끔 방과 후에 다쳐서 오는 애들 생각을 하면 미안하기야 했지만 다섯 시에 땡하고 출발해야 오늘 예약해둔 '렌트' 공연에 늦지 않았다. 보건교사가 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이전까지는 빡센 대학 병...
운좋게도 야근이 없는 날이었다. 파리에 위치한 주 프랑스 독일대사관의 공사참사관 야콥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는 오후 여섯 시가 되자 짐을 다 챙겨 자리에서 일어난다. 얼마 전에 상당히 중대한 의전을 치루고 힘이 다 빠져 있던 참이라 칼퇴근 후 숙소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집이라고 느끼는 독일을 떠나 프랑스에 구한 집은 아무리 오래 지내도...
"야콥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와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 오늘 둘은 각자의 삶을 하나로 함께하게 됩니다. 두 개의 모래가 담긴 병은 각자의 삶과, 각자의 가족과 각자의 친구들을 의미합니다. 두 개의 병은 자신과,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하며 오늘 이전의 삶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두 개의 병에 담긴 모래가 새로운 하나의 병에 담김으로써 분리되...
힐러가 결혼을 했다. 그리고 펠릭스와 펠릭스의 남자친구인 엑토르도 참석했다. 하지만 '함께' 참석하진 않았다. 비밀연애냐고? 그것도 아니다. 1년 하고도 몇 개월 정도가 지났다. 펠릭스가 아는 사람 가운데 못해도 200명 정도는 엑토르가 펠릭스의 연인이라는 것쯤 알고 있다. 다만 몇 개월 전에 둘 사이가 아주 서먹해질만한 일이 있었을 뿐이었다. 펠릭스는 수...
가장 아쉬운 건 역시 바흐 생가가 아니라는 점이려나. 최근 바흐에 흥미가 생겨서 왔는데 아무리 봐도 영 아쉬운 점이 많다. 소장품도 너무 적고 악보가 다 레플리카라는 점은 최악. 그냥저냥, 막 안 볼만하지도 않고 막 볼만하지도 않은 것 같다. 고음악 애호가들이라면 악기 소리를 들어보는 재미는 있을지도. 엑토르는 블로그에 포스트를 올린다. 바흐라는 사람의 명...
키플링은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 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엑토르에게 키플링의 말을 인용했다는 건 숨겨두자. 엑토르는 분명 키플링 그거 인종차별하는 작가였지, 하고 상당히 더럽게 눈을 흘길 것이다.) 펠릭스는 아르마니의 향수를 손목에 가볍게 뿌려본다. 시원하고 상쾌한 바다향이 머릿속 깊은 곳까지 밀려들어온다. 얼마 전에 다녀...
1832년 2월 17일, 스위스 사랑하는 누님, 오늘 아침부터 날씨가 엉망이었습니다. 산맥을 넘고 있는 와중 강풍이 불어닥쳐 눈사태가 시작됐고, 원래 비가 되어 내렸어야 했을 법한 빗방울들은 순식간에 눈이 되어 얼어버렸지요. 눈이 걷기 힘들 정도로 쌓인 데다가 날도 제가 예상한 것에 비해 너무 춥고, 눈이 저를 덮쳐오는 바람에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죽는 줄...
최근 엑토르에게는 새로운 삶의 낙이 생겼다. 누가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배달하는 일이다. 엑토르의 어머니는 동네에서 작은 베이커리를 한다. 어머니가 빵을 굽고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는 사람 살을 째고 있는 셈이다. 엑토르는 늘 아버지가 더 좋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둘이 모두 일을 나갔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에게서 풍기는 비릿한 피냄새와 어머니에게...
저는 군래예고 2학년에 재학중인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입니다. 요새 정말 이상한 일이 저를 둘러싸고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 걱정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대체 어째서일까요? 최근 들어 자꾸 저는 이름이랑 얼굴 정도만 간신히 아는 여학생들이 저를 피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남학생도 가끔 그러고요. 웬만하면 시험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
"나 진짜로 걔랑 헤어질 거야." 쭈그러진 문어, 말라비틀어진 가오리같은 표정을 하고 맥주병을 또 한 병 따고 있는 친구의 말을 무시하고 한손으로 마리에게 친구에게 잡혀서 늦게 들어갈 것 같다는 문자를 보내고 있던 프란츠는 엑토르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너는, 너는 내가 헤어진다는데 걱정도 안 되냐!" "어유, 당연히 걱정되지. 그래서...
클래식 작곡가 RPF/RPS 연성을 합니다. 간혹 작곡가 관련 개인적 사담+ 작곡가 편지 자료+ 작곡가 TMI 자료 등등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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