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전부터 생각하던 건데. 사람들이 다 빨간머리는 안 예쁘다고 그러잖아." 펠릭스는 들고 있던 잔이 몇 밀리미터 정도 손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느낀다. "그랬지."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누나 머리색이라고 하면 되게 예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투아르가 까르륵거린다. 기뻐 보인다. 펠릭스는 곁에 서 있는 프랑수와를 곁눈질하지만 프랑수와는 그저 무...
2월 3일 이 시점쯤에서 우리는 우리의 주인공들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하기 위해 과거의 일을 끄집어낼 필요가 있겠다. 대체 펠릭스 멘델스존과 에투아르 베를리오즈 사이의 엇갈려버린 이 감정과 작전은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작전이 어떤 배경 속에서 나왔는지, 지금껏 너무도 펠릭스의 입장에서 서술되고 있었으니 이제 에투아르 편의 항변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초조...
2월 2일, 프란츠 리스트에게는 평범한 겨울과 봄 사이의 비가 땅을 촉촉하게 적시고 난 다음날이었다. 에투아르에게는 조금 더 중요한 날이었겠지만 말이다. 프란츠는 도랑을 뛰어넘는 에투아르의 손을 잡아준다. 작전회의 겸 수다 시간이었다. "보통, 정식은 아니더라도 대충 구혼한다 싶으면 보호자가 옆에서 감시감독하지않아? 내가 이렇게 누나랑 둘이서만 산책하고 있...
로마에 비하면 추웠지만, 그래도 1월 말이 되자 파리의 날씨도 조금씩 풀려가기 시작했다. 펠릭스는 익숙한 위치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자신의 신경을 이상하게도 자꾸 긁고는 있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임이 분명한 프란츠 리스트의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에투아르를 좋아하는 마음에 신경이 예민해져있겠거니, 별 것도 아닌 것에 질투를 하고 있겠거니...펠...
새로운 1년이 밝아오고 있었다. 프랑수와는 새로운 1년이든지 말든지,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새로운 하루가 밝아온다는 것은 남은 삶의 하루가 또 소멸했다는 의미밖에는 가지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는 상당히 염세주의적인 에투아르조차 너 정말 비관적이구나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었다. 피아노를 치려던 프랑수와는 폭죽 소리에 눈을 질끈 감으며 건반...
"리스트 씨." 프란츠는 교장선생님에게 이름이 불린 듯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다. 예의바르게 미적지근한 미소를 얼굴에 걸고 있는 프랑수와 프란체스카 쇼팽이었다. "쇼팽 양." 프란츠는 가상의 모자를 까딱하고, 프랑수와도 가볍게 고개를 한 차례 끄덕여 인사한다. 프란츠는 조금 굳어서 쭈뻣거린다. "몹시 반가워요. 마지막으로 얼굴 본 것도 꽤 됐죠?" 프랑수와...
12월 11일 수요일, 눈이 송송이 내려앉는 가운데 펠릭스는 삯을 내고 마차에서 내린다. 에투아르의 생일은 사교시즌이 지금부터 8개월간 이어진다는 일종의 신호탄 같은 날이었다. 하인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들어가자 에투아르는 즐겁게 수다를 떨다가 펠릭스를 보고는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거이거 백작님 드디어 납셨네!" 놀랍게도 비꼬는 말이 아니다....
"한 신사분께서 찾아오셨는데요, 본인이 누군진 밝히질 않으십니다. 알 거라시던데요." 알다마다. 프란츠는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현관 앞으로 나간다. "무슈, 오랜만입니다." "무슈 프란츠! 이리 늦은 시간에 찾아온 결례를 용서해주십시오." 프란츠는 웃으며 문을 열어준다. 신사치고는 작은 키에 신사치고는 작은 몸집의 이 사람은 신사가 아니라 숙녀 쪽이다. 목...
펠릭스는 초조하게 손톱을 입가로 가져가다가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스스로를 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흔든다. 살롱에서 봤던 날 에투아르는 몹시 화가 난 채였고, 화난 에투아르를 건드리면 정말 활화산처럼 폭발하기에 펠릭스는 쉽사리 말조차 붙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그렇게 큰 잘못을 했나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또 다시 생각해보면 에투아르는...
대부분의 숙녀는 스무살에서 서른 살 사이에 결혼한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물셋 정도에서 스물여덟 정도 사이에. 그 평균의 끝자락에 걸린 숙녀-비슷한 사람이 여기 하나 있다. 루이즈 에투아르 베를리오즈, 곧 스물일곱이 되는 자유롭고 제멋대로인 베를리오즈 가의 첫째딸이었다. 사교계로 떠밀린 게 언제였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청혼을 받아보지 않았느냐,...
"그리하여 우리는 발렌타인데이를 좀 더 재밌게 만들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에투아르는 프란츠의 말을 입술을 비죽이며 듣는다. 역시 이런 오래된 풍습 쪽보다는 로맨틱한 카드를 보내주는 편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복잡하고 현란한 레이스모양으로 오려진 종이에, 정성스럽게 수채화로 그려진 자신의 초상화, 그리고 이왕이면 직접 쓴 정성스런 소네트까지 있으면 얼마나...
프랑수와는 텅 빈 무대 배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다. 언제나처럼 벨리니의 음악은 좋았다. 배우들도 딱히 흠잡을 곳이 없었으며, 전체적으로 무난한 공연이었다. 극장에 나온 것도 몇 개월만이었는데, 그 몇 개월 사이에 또 많은 것이 변해있음을 프랑수와는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유행하는 드레스부터 떠들어대는 화제하며… 아니 사실 변하지 않은 것이 더 적었다. ...
클래식 작곡가 RPF/RPS 연성을 합니다. 간혹 작곡가 관련 개인적 사담+ 작곡가 편지 자료+ 작곡가 TMI 자료 등등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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