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죽음, PTSD 등의 민감한 소재 주의 “F203은 좀 마음을 열고 있니?” 나는 붕대를 세척하는 아버지 곁에 서서 고개를 저었다. 깨끗한 붕대가 없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F203 말고, 뭐 다른 부를 만한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을까요?” “그럼 달리 뭐라고 부르겠니.” F203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는 아이는 실험체 같은 것이 아니...
“보여? 오늘 V부 분위기 장난 아니던데.” 브람스는 눈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 테이블을 가리키는 드보르작의 시선을 따라가본다. 슈만 과장, 슈베르트 팀장, 헨젤 과장 모두가 아주 묵묵히 밥만 먹고 있었다. “V부 올해 실적 제법 괜찮지 않았었나? 다들 엄청 처졌네.” “그니까. 분위기 작살이야.” 그때 브람스의 휴대전화가 띵, 하고 메시지 알람을 울린다...
초인종. 그리고 기다리지도 않고 들려오는 삑삑삑 소리. 루이즈다! 펠릭스는 저녁을 자기 것만 만들어둔 걸 후회하며 현관 앞으로 달려간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붉은 곱슬머리, 살짝 탄 피부와 하늘색 셔츠, 청바지에 운동화의 루이즈가 펠릭스의 품안으로 뛰어든다. 펠릭스는 루이즈를 그대로 안아들고, 루이즈가 펠릭스에게 입을 몇 번이고 맞춘다. 루이즈 멘델스존 바르...
에투아르는 안주인께 정중하게 인사를 드린 뒤 문을 닫고 나간다. 레이디스 메이드로 채용되고 처음 얻는 휴가였다. 손재주 있고, 탁월한 미적 감각과 수준높은 교양, 사교성과 묵묵함에 대한 보상, 그런 자리라고 주변에서는 말했다. 에투아르는 라틴어를 읽고, 쓰고,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알며 똑똑한, 보기 드문 조건을 갖춘 프랑스인 하녀였다. 이 집안의...
펠릭스는 집에 와서 하는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다. 흔한 가부장제적 남편이라서 '밥 줘' '아이는' '자자' 라는 소리만 한다는 게 아니고, 집에 오면 이미 엑토르와 하루의 수다를 떨어주기에는 기력이 다 소진되어 있다. 펠릭스 본인도 자기가 그런다는 걸 자주 알고 있어 은근슬쩍 책을 읽는 엑토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옆자리에 앉아, 오늘은 어땠어요, 라든가...
"너와 사랑해보고 싶어." 프랑스 국립도서관 로비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던 말이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며 그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로 이곳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였다. 십 년 전,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와 사귀고 있었다. 그때부터 베토벤을 좋아했었고, 아마 지...
그래서 결국 헤어지셨어요? 처음 보는 여자와 동석해서 커피나 마시고 있다니. 며칠 전에 자신이 한때 사랑했을지도 모르던 연인과 헤어진 뒤 이렇게나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됐죠. 먼저 이별을 고하셨다 하지 않으셨어요? 그도 그렇지요. 그런데 '그렇게 됐다' 라고 하시니 굉장히 이상하네요. 그렇군요.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그렇게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발밑으로 퍽이나 행복이 잘도 굴러들어오겠다- 라는 소리는, 엑토르 베를리오즈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백만번쯤 들은 소리였다. 그 말은 맞는 말이다. 발밑으로 행복이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일은 없다. 또 자기 혼자만 행복한다고 해서 그 행복이 성취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엑토르, 엑토르! 로션은 대체 어디다가 놔뒀어요?" 높고 맑...
주머니에서 꺼낸 회중시계의 째깍거리던 초침을 초조하게 바라보다가 펠릭스는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 소리를 지른다. "에투아르! 몇 분이나 더 걸려요? 말했잖아요! 이미 충분히 예쁘다고요! 그 이상은 허영이예요!" "허영이고 자시고, 그게 지금 문제가 아니야! 나한테는 되게 중요한 거라고! 펠릭스, 우리 어머니가 우리 결혼식 때 선물로 준 목걸이 어딨는지 ...
하늘이 정말 참 밝고 맑았다. 일요일 나들이옷을 입은 가족, 연인, 부부, 친구들이 쌍쌍이 성당에서 빠져나오고 프란츠도 천천히 문을 나선다. 좀 더 사람이 없는 시간에 올 걸 그랬다. 대체 머리카락은 언제 뭉텅이로 잘렸는지 모르겠고, 분명히 주머니에 넣어 뒀던 손수건과 악보 몇 장도 사라진 것 같았다. 아까 정신없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를 때- (덕분에 분명...
프랑수와는 피아노를 연주한다. 부드러운 음에 강렬한 음, 화음을 쌓고 템포 루바토, 조금 더 무게를 실어 건반을 눌렀다가 허리를 편다. 저음의 불협화음이 나도록 설계된 건반 세 개를 함께 누르고, 소리가 공기 중에 입자로 서로 부딪히다가 퍼져나갈 때서야 건반에서 프랑수와의 손이 떠난다. 프랑수와는 애정어린 손길로 플레옐 피아노의 모든 건반을 부드럽게 한 차...
파리의 사교시즌도 이미 다 끝났고, 더운 날씨는 물러갔지만 대신 불청객, 눈과 비가 찾아올 차례였다. 에투아르는 바깥에 굵게 내리고 있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파리도 날씨가 매우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런던은 이것보다 더 나쁘겠지? 자연스레 에투아르의 생각이 지금 런던에 있을 모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겸 오르가니스트 겸 작곡가 겸 음악연구가에게로 날아간다...
클래식 작곡가 RPF/RPS 연성을 합니다. 간혹 작곡가 관련 개인적 사담+ 작곡가 편지 자료+ 작곡가 TMI 자료 등등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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